수학적 영상처리

라돈 변환과 CT 스캔 개발의 숨겨진 이야기들

제갈티 2025. 5. 27. 22:31

 

1917년, 오스트리아의 수학자 요한 라돈은 빈 대학의 어두운 연구실에서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그는 순수 수학의 아름다움에 몰두했죠. 그날 밤, 그는 함수가 선 적분들로부터 재구성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증명했습니다. 당시 누구도 이 추상적인 수학 이론이 50년 후 의학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1960년대, 남아프리카 출신의 물리학자 앨런 코맥은 케이프타운 대학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환자의 몸을 투과한 X선의 감쇠 패턴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만약 여러 각도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 그는 라돈의 오래된 논문을 발견했고, 흥분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 EMI 레코드사의 연구원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틀즈의 음반 판매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전자공학 엔지니어였던 그는 컴퓨터와 X선을 결합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1971년, 하운스필드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소의 뇌를 스캔하는 데 9일이 걸렸습니다. 연구팀은 좌절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문제라면, 더 빠른 알고리즘을 만들면 된다!" 그는 밤낮없이 코드를 수정했고, 마침내 스캔 시간을 9시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첫 인체 실험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1971년 10월 1일, 윔블던 병원에서 한 여성 환자가 거대한 기계 앞에 누웠습니다. 의료진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5분... 10분... 20분... 마침내 모니터에 흐릿한 영상이 나타났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뇌 단면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그 영상에서 종양이 선명하게 보였고, 수술팀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학계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X선 사진으로 충분하다"는 보수적인 의사들, "너무 비싸다"는 병원 경영진, "방사선 노출이 위험하다"는 비판자들... 하운스필드와 코맥은 수없는 거절과 조롱을 견뎌야 했습니다.

극적인 전환점은 1973년에 찾아왔습니다. 뉴욕의 한 병원에서 원인 불명의 두통으로 고통받던 7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기존 검사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CT 스캔은 뇌 깊숙한 곳의 작은 종양을 찾아냈습니다. 성공적인 수술 후 완치된 소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 퍼졌고, CT 스캔은 '기적의 기계'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스톡홀름의 노벨상 시상식장. 하운스필드와 코맥은 나란히 단상에 올랐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대륙에서, 서로를 모른 채 같은 꿈을 꾸었고, 결국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시상식에서 하운스필드는 말했습니다. "라돈의 순수한 수학적 호기심이 없었다면, 오늘의 CT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매년 수억 건의 CT 스캔이 시행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수학 이론이, 록 음악의 수익금과 만나,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사의 가장 아름다운 우연이자 필연의 이야기입니다.